보도자료

봉제골목에 스며든 문화예술 – Weekly 공감

2019.02.13 31 0 artbridge

“종로 창신동은 도성 밖 첫 마을로, 서울 중심의 문화와 외곽의 문화가 만나는 곳이었죠.”

사회적기업 아트브릿지를 운영하는 신현길 대표는 창신동에 숨겨진 옛이야기를 마치 전래동화를 읽어주는 것처럼 설명했다.

봉제공장 밀집지역인 창신동을 돌며 지역에 얽힌 이야기, 창신동을 거쳐 간 예술가들의 흔적을 들려줬다.창신동 하면 봉제공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실제 창신동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정신없이 옷감을 옮기거나 완성된 물품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들을 볼 수 있다. 1961년 평화시장이 생기고, 1971년 동대문종합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창신동 일대에는 봉제공장이 모여들었다. 동대문에서 주문한 옷들을 하루 이틀에 만들어서 납품하는 빠른 스피드가 창신동 봉제공장의 경쟁력이다. 이러한 경쟁력은 창신동 노동자들의 헌신의 결과이기도 하다.신 대표는 창신동 노동자들의 일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밤낮없이 일하고, 토요일에 다 함께 치맥 한잔하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러젖히는 게 일상이죠. 늦은 밤 두세 시에도 오토바이들이 쉼 없이 다닐 정도로 공장이 계속 돌아가요. 문화생활이랄 게 없어요.”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비탈길을 달리는 오토바이가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신 대표는 “오히려 보행자나 운전자 모두 조심하기 때문에 사고가 다른 곳보다 적은 곳이 창신동”이라며 “자연스럽게 서로 배려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신현길 아트브릿지 대표

▶ 신현길 아트브릿지 대표 ⓒC영상미디어

박수근과 백남준의 예술혼이 숨 쉬는 곳

재봉틀 소리가 멈추지 않는 창신동에는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다. 단종과 정순왕후, 박수근, 김광석, 백남준, 전태일. 어찌 보면 서로 관계가 없는 인물들이지만, 모두 창신동에서 자라거나 살거나 예술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계적 예술가 백남준이 나고 자랐으며, 자신만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구축한 박수근은 예술혼을 불태웠고, 정순왕후가 강원도로 귀양을 떠난 단종을 그리워했으며, 전태일이 어려운 노동자의 삶으로 고뇌했던 곳이 창신동이다. 영화 ‘아리랑’을 만든 나운규의 영화사 ‘나운규 프로덕션’이 자리했던 곳도 창신동이다.

최근에는 박수근과 백남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창신동은 꼭 한 번 들러야 하는 곳이다. 6·25전쟁이 끝났을 때, 박수근은 1952년부터 1963년까지 가족들과 창신동에서 살았다. 그가 살았던 창신동 393-16번지에 그의 집은 남아 있지 않지만 박수근 집터를 알리는 표식이 설치되어 있어 그를 기억하게 한다. 창신동 197-33번지에는 백남준 기념관이 있다. 1937년부터 1950년까지 13년 동안 백남준이 자란 곳이다.

대학로에서 아동 연극을 만들던 신 대표는 2012년 이곳 창신동을 찾았을 때 이러한 예술가들의 향기에 크게 매료됐다. 그는 대학로 사무실을 접고, 창신동에 ‘뭐든지 예술학교’를 만들었다. 가파른 비탈길, 재봉틀 소리와 오토바이 소음 속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을 위한 연극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설이다.

“1925년 한국 최초의 연극·영화배우 양성전문학교, 조선배우학교가 시작된 곳이 창신동입니다. 창신동에서 예술가들이 나고 자란 것은 우연이 아니죠. 지역의 역사성을 잇고 싶다는 생각에서 창신동에서 연극학교를 열었습니다.”

그가 설립한 사회적기업 아트브릿지는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적 행복 창조’를 목표로 우리 역사와 인물, 아시아 문화를 소재로 연극과 체험, 놀이가 결합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역사를 소재로 한 연극을 제작하고, 아이들이 연극에 직접 참여하도록 교육과정을 꾸려가는 기업이다.

신 대표가 아이들에 맞춘 공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할 때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30분 만에 돌아보고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 역사를 재미있게 알려줄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우리 역사와 연극과 체험이 결합된 연극이 목표였죠.”

이러한 취지로 전국에서는 관련 공연을 하고 창신동에서는 ‘뭐든지 예술학교’를 중심으로 지역에 적합한 공연과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밥상처럼 어울리는 ‘문화밥상’

2017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으로 선정돼 작년 5월부터 ‘창신동 문화밥상’을 진행 중이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창신동 곳곳을 찾아 다양한 공연을 하고 있다. ‘문화밥상’은 신 대표가 생각하는 문화에 대한 정의에서 시작한다.

“사람들이 밥상에 앉아 어울려 밥을 먹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남녀노소 문화를 밥상에 올려놓고 즐기는 모습과 비슷하죠. 그렇게 다 함께 유쾌하게 즐기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어요.”

‘문화가 있는 날’에 도시락을 준비해 봉제공장을 찾아가 뮤지컬을 들려주면 반응이 어떨까. 일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창신동 문화밥상 프로그램은 동생의 학업을 위해 청춘을 봉제공장에서 불태우며 눈코 뜰 새 없이 부지런히 살아가는 우리의 누나들에 주목했다. 이런 취지에서 시작된 ‘누나 고마워요’ 프로젝트는 추억의 도시락과 함께 뮤지컬 배우들의 공연이 이어진다. 공연이 시작되면 반응이 뜨겁다.

“뮤지컬 ‘지금 이 순간’을 부르자, 어머님들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눈물을 흘리시는 분도 계셨어요. ‘직접 들은 것은 처음’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늘 일만 하시던 분들이라 라이브가 주는 감동이 컸던 것 같아요.”

문화가 있는 날, 창신문화밥상 9월 행사 중 주민패션쇼

▶ 1 문화가 있는 날, 창신문화밥상 9월 행사 중 주민패션쇼 2 문화가 있는 날, 창신문화밥상 6월 공연 ⓒ아트브릿지

문화와 예술을 즐기고 싶어 하는 누구나 가까이에서 공연을 보고 느끼게 하겠다는 기획 목적을 살린 결과다. 공연 참가자들은 “비록 창신동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누구나 문화를 느끼고 싶고, 나아가 참여하고 싶어 한다”며 공연 소감을 이야기한다.

지역 생활예술가 양성 목표

창신동 봉제길을 따라 주민들과 지역 문화예술가들이 함께 제작한 대형 인형과 여러 가지 창신동 관련 창작물을 전시하는 ‘행복한 봉제마을’ 전시회, 창신2동 주민센터 앞마당에서 지역 주민들과 직접 만든 밥상을 나누며 공연을 관람하는 ‘행복한 문화밥상’ 공연, 나만의 봉제 소품을 만들어보는 ‘드르륵 뚝딱 창신동 봉제공작소’ 등의 행사도 진행 중이다.

신현길 대표와 아트브릿지 동료들

▶ 신현길 대표와 아트브릿지 동료들 ⓒC영상미디어

이렇듯 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소박하게나마 향유하는 것이 창신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신현길 대표는 단연 ‘창작의 기쁨’일 거라고 강조했다.

“봉제공장에서 하루 종일 수천 벌, 수만 벌 똑같은 옷을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답답해요. 이러한 답답함이 스트레스가 되는 거죠. 그들은 공연을 보면서 위로를 느낄 것이고,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앞치마를 만들어 선보이고 퀼트, 오방천 등을 만들어 내놓으면서 창조적 디자인에 대한 갈증을 푸는 효과가 있어요.”

신 대표는 주민들이 지역의 생활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데 의미를 찾았다.

지역에 터 잡으면서, 특히 어린이들의 예술 참여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원래 아동 연극으로 시작해서인지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신 대표는 아이들에게 지역에 특화된 예술교육을 시켜야 하는 이유로 ‘자존감’을 들었다.

“창신동의 역사를 잘 모르는 아이들은 창신동에 대해 물으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해요. 단종과 정순왕후의 역사가 숨 쉬는 곳이고, 백남준과 박수근이 활동했던 공간과 기억을 알려주면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신현길 대표는 지역의 꿈나무들이 연극을 연습하는 과정 속에서 역사의 인물을 익히고 자부심을 갖도록 이 작업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더욱이 연극을 하면서 길러지는 협동심도 중요한 교육 목표 가운데 하나다.